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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 주다 (정보 소개)/와인과 함께

와인의 어원과 역사

by Daniel Notes 2021.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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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는 '와인 한 잔이 사람을 제대로 알게 된다'라는 속담이 있다. 프랑스의 영원한 경쟁자 영국에는 '와인은 정신을 일깨우게끔 던지는 돌멩이와 같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영국 속담은 그들의 음식 마냥 형편없다. 반면 프랑스 속담은 영국 속담보다는 뭔가 고상해 보인다. 최근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 배우가 영국 사람들을 표현하면서 고상한 척한다는 단어를 써서 웃음을 주었는데 프랑스 사람들이 영국 사람들보다 먹는 것에 대해서 만큼은 더 고상한 척하는 것 같다. 작곡가 하이네는 다음과 같이 프랑스인을 찬양했다. "프랑스인에게 부디 영광을 있기를. 그들은 인류에게 꼭 필요한 두 가지를 위해 일한다. 그것은 미식과 시민적 평등이다." 이러한 와인에 대해서 어원과 역사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와인의 어원

와인(Wine)의 어원은 라틴어의 비넘(Vinum)에서 유래되었다. 프랑스어로는 뱅(vin), 독일어로는 벵(wein), 스페인어와 체코어로는 비노(vino), 포루투칼어로는 빈뇨(vinho)이다.  약 700만 년 전부터 포도나무는 있었으며 포도가 익어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발효하면서 와인이 되었다고 전해지면서 술 중에서 가장 먼저 생산된 술이 와인으로 추정된다. 인류 스스로 와인을 담아 마시기 시작한 것은 약 6~7천년 전 석기시대부터이며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의 소아시아 지역(카프카스 혹은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와인의 시작 : 소아시아 지역

 

와인의 역사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최초의 와인은 기원전 5,500년경 이란에서 발견된 항아리 유물이며 기원전 3,500년경에 사람들이 와인을 만들어 마셨다는 것은  고대 이집트 벽화와 앗시리아 유적의 상형문자를 통해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이집트에서 지중해 연안 국가로 전파되었고 로마제국을 통해 유럽에 와인이 전파되었다. 로마군들이 식민지를 점령하면서 포도밭을 개척하고 와인을 생산했기 때문이다. 

 

8세기에는 황을 이용한 오크통을 소독하고 코르크를 이용하여 병을 밀봉하는 방법이 고안되어 와인의 저장기간을 1년을 넘을 수 있게 되었다. 1860년대에 와인 품질이 크게 향상 되는데 제일 큰 공로를 세운 이는 프랑스 과학자 루이 파스퇴르(1822~1895)였다. 그는 미생물에 의한 발효와 부패에 대한 과학적 연구로 발표하였고 이는 발효, 살균 등 와인 양조 방법을 크게 발전시켰다.

 

19세기 후반 필록세라*의 유행은 굉장히  영향을 미쳤다. 전통적인 원산의 블랜드 방식을 무너뜨렸다. 그것은 보르도와 같은 다양하게 접합된 상태에서 북아메리카를 근원으로 단일 작물 재배로 대체되었다. 포도 재배자는 삭막한 선택에 마주했다. 그것은 새로운 기법을 받아들이거나 또다른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필록세라는 정부가 식물 작물과 기술을 교화하는 데 있어 새로운 사회 기반 시설을 개발하는데 자극제가 되었다. 또 다른 트렌드는다른 나라에서 지역 포도주로 오는 벌크와인 , 병에 담겨 있지 않은 포도주를 섞는 것이었다.

 

* 필록세라(Phyloxera)

포도나무 뿌리의 즙을 흡즙 하여 고사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해충으로 우리나라말로는 '포도나무뿌리 진드기'라 한다. 미국에서 유럽으로 유입되어 1863년 프랑스 랑그독 지방을 시작으로 1869년 프랑스 보르도 지방, 1875년 이탈리아, 1878년 스페인, 1881년 독일 등 이 해충으로 인해 전체 포도나무의 80%가량을 뿌리째 뽑아야 하는 초유의 대재앙을 겪었다. 19세기 후반 유럽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퍼져 와인사업의 기반을 말 그대로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이때부터 국가 간 동·식물이 이동할 때는 반드시 오염상태를 조사하는 검역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생물학적 관리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1976 파리의 심판(Judgement of Paris)을 통해 프랑스 와인 명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파리의 심판은 1976년 파리의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평론가 11인(이중 프랑스인이 9명)을 대상으로 프랑스 와인과 미국 와인에 대해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진행했는데 미국 와인이 프랑스 와인을 이긴 사건이다. 자세한 1976년 파리의 심판에 대해서는 내용이 긴 관계로 다음 편에 올리도록 하겠다. 아무튼 파리의 심판 이후 포도주 제조자들은 과학 기술을 동원하고 품종 개량을 하면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 사건으로 신대륙 와인들의 편견이 어느 정도 지워지면서 신대륙에 대한 소비도 늘어나게 된다.

 

'1976년 파리의 심판' 40주년 기념 디너가 2006년 압구정 와인바 뱅가(vin ga)에서 열리기도 했다.(출처 : 개인 척한 고냥이) 

 

# 참고도서 및 출처 : <와인 입문자를 위한 와인 북>(엄경자 저, 아키오, 2021),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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