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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5만 원권의 인물이 신사임당이 되었을까?

by Daniel Notes 2021.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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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신사임당 초상화가 그려진 5만 원권 지폐는 2009년 6월 23일에 최초로 발행되었다. 1973년 만 원권 지폐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최고액권이다. 한국은행은 2009 상반기에 5만원권 발행을 준비하면서 각계 전문가와 한은 부총재 등이 참여한 화폐도안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회에서 고액 지폐에 들어갈 인물 후보로 20명을 선발한 성인 남녀 1000명과 각계 전문가 150명을 대상으로 후보를 10명으로 압축했다. 10만 원권만원권 후보엔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이 일찌감치 낙점됐지만 5만원권 후보였던 신사임당은 장영실과 유관순이 끝까지 각축을 벌였다. 결국 한은은 한국 사회의 양성 평등의식을 제고하고, 여성의 사회 참여에 긍정적으로 기여한다는 취지로 신사임당을 최종 선정했다. 5만 원권의 신사임당을 그린 사람은 서울대 미대 명예교수 이종상 화백으로 오천 원권 지폐의 율곡 이이도 그렸다.

 

논란

초상화 인물 선정 과정에서 잡음이 많았는데, 당시 여론은 10 원권 인물에 대해 모든 관심이 쏠렸기에 상대적으로 5 원권의 인물은 쉽게 통과되었다. '굳이' 여성 인물로 선정된 것도 선정위원회가 여성계를 의식해서 '그래도 사람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라고 내놓은 의견이 대중에게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때 신사임당과의 최대 라이벌은 장영실과 유관순. 하지만 10 원권이 결국 유통 생산이 무기한 보류되었기에 얼떨결에 최고액권의 모델이 것이다. 화폐의 인물로 등록되기에는 생전 활약이 전무하다고 해도 정도로 부족한 인물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성평등의 추세에 따라 여성 인물을 화폐에 삽입하기야 했으나, 정작 여성계에서도 신사임당에 대한 반응이 좋지 않았고 오히려 반대하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신사임당의 이미지는 '아들 이이를 훌륭하게 키워놓은 현모양처'이지 '자유롭고 적극적인 여성' 정반대되는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히려 여성 위인이라는 점이 '대한민국의 여성을 대표'하는 것으로 비추어질 있고, 그렇다면 구시대적 관점에서 현대 여성들에게 '현모양처'로서의 구시대적 여성상을 강요하는 것으로 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사임당이 전형적인 현모양처와 거리가 있는 인물이라는 역사적 평가도 있다. 때문에 역사적인 관점에서 '역사도 모르면서 나대지 마라' 식으로 여성계를 비웃는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여성계가 신사임당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이유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 역사적 사실과는 상관없이 퍼져있는 신사임당의 이미지가 '현모양처'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현모양처로서의 신사임당' 없었다면 신사임당이 '위인'으로 추앙받고, 그것도 화폐도안이 정도의 인물이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수백 년간 신사임당은 '아들 이이를 훌륭하게 키우고 남편을 보좌한 여성이자 모든 여성들이 본받아야 인물'로서 부각되어 왔고 신사임당을 '화폐에 쓰일 정도의 위인'으로 만들어준 역시 결국 그런 현모양처로서의 이미지였다. 결국 역사적인 진실과는 별개로 '위인으로서의 신사임당' '전형적인 현모양처' 불과하다. 굳이 여성을 하려면 유관순을 5만 원권을 모델로 해야 되지 않았을까?  

 

* 참고 : 매일경제(2012년 8월 24일자),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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