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 평전 <직실에 복무하다>(권태선 지음, 창비, 2020)를 보면 1970년대 후반 시절, 검사의 기소가 얼마나 자의적아고 비상식적인지 알 수 있다.
' 검찰로 송치된 이후에도 당국의 억지 주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 법집행이 얼마나 자의적이었는지는 뒷날 그가 쓴 꽁뜨성 에세이 「D검사와 이교수의 하루」에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그 에세이에 D검사로 표기된 이는 공안검사 황상구(黃相九)였다. 그 에세이에 따르면 뒤에 대구고검 검사장까지 지낸 황상구는 서울대 재학 중 고시에 합격한 것을 자랑으로 삼으며 스스로 우리 사회의 최고 엘리트라고 자부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 ‘최고 엘리트’ 검사는 수사과정에서 법에 따라 논리적으로 잘잘못을 따지는 대신 ‘객관적 진실이 문제가 아니라 검사가 반공법 위반이라고 하면 반공법 위반’이라는 ‘유명한’ 발언을 남긴다.
그는 「농사꾼 임군에게 띄우는 편지」의 다음 구절을 물고 늘어졌다. “나는 농민이 좀더 정치적 감각과 사회에 관한 문제의식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네. 그것은 ‘생각한다’는 뜻인데 (…) 생각한다는 것은, 더욱이 생각한 결과를 말한다는 것은 이 사회에서는 자신에게 형벌을 가하는 일이 된 듯싶네. 그러나 ‘정치는 내가 할 테니 너희는 농사만 지으면 된다’는 말이야 성립될 수 없지 않겠는가. 우리 농민은 너무 오랫동안 복종과 순종만을 해온 것 같아. 생각하고 저항할 줄 아는 농민을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네.”
이 편지는 리영희가 주례를 섰던 임수대라는 젊은이에게 보내는 글이었다. 임수대는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농촌으로 돌아가 농민운동에 투신하고 있었다. ‘생각하고 저항할 줄 아는 농민’의 필요성을 지적한 것을 두고 황검사는 공소장에서 “노동자·농민·영세민을 주축으로 하는 공산혁명을 해야 한다고 선동함과 동시에 농민 중심의 모택동의 공산혁명사상을 은연중 찬양·고무하여 반국가단체인 북한 공산집단 및 국외 공산계열인 중공의 활동을 찬양·고무 또는 동조하는 등으로 이들 단체를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8억인과의 대화』에 번역 소개된 글 중에 “역사라는 저울에 걸 때, 모택동 체제는 저울 한쪽에 그 헤라클레스적 위업을 자랑스럽게 올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내용과 “인구 1,200만 상해시는 424개의 병원에 4만 4,000개의 입원환자 수용능력과 1만 1,500명의 의사(한의사 포함)가 있어 뉴욕시의 주민들보다도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받고 있다”는 내용을 문제 삼았다.
황검사는 이 내용이 공산권 국가에선 인민들이 헐벗은 채 모든 권리를 빼앗기고 살아간다고 써놓은 한국 교과서의 내용과 너무 달라 고무·찬양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 글은 미국 경제학회 회장인 케네스 갤브레이스가 현장을 살펴본 뒤 객관적 사실에 기반해 쓴 것이라고 반박했지만 돌아온 것은 “객관적 진실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여기서 문제가 되지 않아요. 우리나라 학교의 교과서에 쓰여 있는 대로냐 아니냐가 문제인 거예요”라는 억지 주장이었다. 이어진 취조과정에서도 이 엘리트 검사는 논리에 논리로 맞서는 대신 “당신이 뭐라고 변명하든, 무슨 학문적 이론을 내세우든 검사가 ‘반공법 위반이다’ 하면 위반인 거요. ‘우상과 이성’이라니, 누가 우상이고 누가 이성이라는 말이야! 건방지게시리!”라고 겁박할 뿐이었다.'
얼마 전 이주혁 의사는 2016년 9월에 발생한 고 권대희군 사건에 대하여 2020년에 PD 수첩이 취재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페이스북에 썼다.
'고 권대희군 사건.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 수술을 받던 중 사망한 20대 남성에 관한 사건이다.
당시 수술 중 출혈이 매우 심했는데도 집도의사는 옆방의 다른 환자를 수술하러 자리를 뜨고, 위급한 환자를 간호조무사에게 맡겨놓고 약 30분간 방치한 사건이다. 이후 권대희군은 대량의 출혈로 인해 결국 사망한다.
이렇게, 간호조무사에게 지혈을 맡기고 방치한 집도의의 행위에 대해 보건복지부를 포함한 여러 기관들에서, 위법한 것으로 자문하였음에도 불구, 고 권대희군 사건의 담당인 의사 출신 성재호 검사는 집도의의 행위가 위법하지 않다며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려버린다.
MBC PD수첩에서 '검사와 의사 친구'라는 제하에 이 기가 찬 사건을 조망하였다. 그리고 집도의의 변호인과 성재호 검사가 대학교 및 사법연수원 동기, 친구라는 것을 입증한다.
PD수첩에서 성 검사에게 물었다. 어째서 그리 처분하였는지. 성검사의 대답은 결국 이것이다.
"내가 혐의 없다면 없는 것이다."
그 어떤 논리도 필요 없었다.
그저 힘과 권력으로 눌러버리겠다는 것이 그의 분명한 의도였을 뿐이다.
고 권대희군의 유가족은 항고하였으나 그마저 기각된다.
얼마 전에야 비로소, 법원에서 이 사건을 기소하라고 명령이 내려와 강제로 재판이 열릴 전망이다.'
증거가 없어도 검사가 위법이다 하면 위법인 것이고, 범죄 증거가 넘쳐나도 검사가 혐의가 없다면 없는거다 라며 당당히 말하는 검사들. 1978년과 2020년의 검사 태도를 보면 4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변함이 없다.
얼마전 공수처법이 통과되었고 검경 수사관 조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요 범죄의 수사권, 기소권(기소독점권)과 불기소권을 갖고 있는 검찰이다. 검찰이 제대로 권한 행세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인권은 더욱 후퇴할 것이다.
현재 더불어 민주당에서는 수사와 기소를 완전히 분리하는 검찰 개혁안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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