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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 영화, 드라마 외 )/책과 함께 (도서 추천)

도서 추천 : 반전의 묘미를 보여주는 박완서 작가의 문학상 수상 모음집 <환각의 나비>(박완서, 푸르메, 2006)

by Daniel Notes 2021.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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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에 교보문고에서 이벤트를 통해 이북리더기 Sam 7.8을 구입했더니 이북 정액제 서비스가 포함되어 있어서 한 달에 12 권을 다운로드하여 180일 동안 읽을 수 있다. 또 다른 이북 서비스 '밀리의 서재'는 며칠 전에 가입했는데 한 달 동안 무료로 이북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최신 도서는 몇 권 안보이긴 하지만 읽고 싶은 책을 Sam과 밀리의 서재로 찾아보면 심심찮게 읽고 싶은 책이 있었다. 10만 권의 책을 월 9,900원에 읽을 수 있다고 홍보하는 밀리의 서재가 그나마 다른 이북 서비스 업체보다는 잘 구비해놓은 듯하여 무료 서비스 종료 후에도 유료 가입을 할 것 같다. 

 

이북을 어찌 종이책에게 비교할 수 있겠냐마는 종이책 대신 이북을 구입하면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첫 번째로 책장을 추가로 구입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기에 책장을 놓을 데가 없다는 핑계로 집을 넓혀 갈 필요가 없다. 돈이 없어서 넓은 집으로 이사 못 가는 게 아니고 종이책을 구입하지 않으니 넓은 집이 필요 없는 것이다. 두 번째로 종이책을 집에 주문을 하지 않고 이북을 다운로드 받으니 아내가 모른다는 점이다. 나이가 들면서 책을 구입하는 것조차 눈치를 보게 되다니 5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아내가 내 서재를 청소할 때 책장 안에 쌓여 가는 책을 보면 눈치가 보인다. 책을 좋아하는 여자와 다시 결혼할 수 없는 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

 

다음 달 즈음 '밀리의 서재'를 유료 가입하게 되면 넷플릭스(영화), 유튜브 프리미엄, 타이달(하이파이 음악)에 이어 4번째 월 정액제를 사용하게 된다. 가랑비에 옷 젖는 듯 스트리밍 서비스 월 정액제 때문에 나가는 돈이 은근히 많다. 그나마 내 신용카드 세부내역을 살펴보지 않는 아내에게 감사하다.  

 

<환각의 나비>

 

박완서 작가의 <엄마의 말뚝>을 읽고 박완서 작가의 진면목을 이제야 알게 된 나의 무지를 탓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몇몇 지인들이 자신들의 최애 작가라며 <아주 오래된 농담>, <환각의 나비> 등을 추천해줬다. <아주 오래된 농담>은 밀리의 서재에 있었고 <환각의 나비>는 교보문고 Sam 서비스에 있었다. 설 연휴 마지막 날에 <환각의 나비> 이북을 다운로드 받아서 읽었다. 

 

<환각의 나비>는 소설가 박완서의 문학상 수상작 모음집이다. 세계사 출판사에서 나온 <엄마의 말뚝>과 푸르메 출판사에서 나온 <환각의 나비>에 실어 있는 단편소설들이 많이 겹쳤다. 단편소설 <그 가을의 사흘 동안>, <엄마의 말뚝 2>, <꿈꾸는 인큐베이터>등 3편이 양쪽 소설집에 동시에 실려 있다. 소설집 <환각의 나비>에 실려 있는 5편 중에 내가 읽지 않은 단편소설은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과 소설집 제목과 동일한 <환각의 나비>이다.

 

며칠 동안 박완서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짧은 단편 소설에도 생각지도 못한 반전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는 점이다. <그 가을의 사흘 동안>에 주인공 '나'는 변두리 동네에 개업을 하려는 의사로 6.25 때 서양 군인에게 강간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짤막하게 나오는데 강간을 당했던 의사 '나'는 다른 전공도 아닌 산부인과로 업종을 정하고 첫 환자만 아기를 받고 그 이후에는 동네 창녀들의 낙태만을 시술한다. 은퇴할 때까지 남은 시간은 사흘 동안 낙태가 아닌 새로운 생명을 은퇴하기 전 마지막으로 받고자 고군분투하는 의사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그 모습이 웃프다 못해 아련해 보였다. <엄마의 말뚝 2> 수술 후 어머니에게 기억되는 6.25 때 죽은 오빠의 상황이 갑작스럽게 처절하게 그려진다. <엄마의 말뚝>은 1, 2, 3 편으로 구성된 연작 소설로 <엄마의 말뚝 1>과 <엄마의 말뚝 3>도 함께 읽기를 권한다. <꿈꾸는 인큐베이터>는 오지랖 넓은 '나'가 조카의 유치원 학예회 때 만난 다른 아이의 아빠와의 불륜 이야기인가 하다가 페미니즘 소설인가 하다가 급작스럽게 '낙태'가 여자에게 얼마나 치욕적이고 야만적인 것인지 그려내면서 독자로 하여금 혼을 빼놓는다. 이렇게 독자가 박완서 작가에게 휘둘리게 되면 다음 소설은 도대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궁금하면서 기대를 할 수밖에 없다.

 

<환각의 나비> 역시 이야기가 어느 쪽으로 흘러갈지 반전을 기대하게 한다. 아파트와 원주민 동네 이야기에 천민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인가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어머니의 치매에 대한 이야기로 바뀌어 있다. 치매에 결린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가족의 갈등과 가족들의 위선을 속도감 있게 그려낸다. 어머니가 실종된 후 마지막에 어머니를 원주민 동네에서 다시 찾게 되면서 끝나는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하면서 독자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모노드라마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한 어머니가 그 손위 동서와 주고받는 전화 통화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박완서 작가는 김현승의 시 ‘눈물’의 한 구절을 제목으로 삼았다. 먼저 남편을 떠나보낸 뒤 애지중지 키운 아들마저 잃은 어머니의 심경을 때론 담담하고 때론 가슴 저미는 슬픔을 담아 현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박완서 작가 역시 남편을 떠나 버린 후 아들 역시 젊은 나이에 저 세상으로 보낸 아픈 경험이 있다. 동일한 제목으로 모노드라마로 각색하여 큰 사랑을 받았던 연극 작품도 있는데 배우 '손숙'이 출연한 바 있다. 이 소설의 제목을 만들게 한 시인 김현승의 '눈물'이라는 시는 사랑하는 어린 아들을 먼저 죽음의 세계로 보낸 비극적인 상황에서 쓴 것으로, 자신이 겪은 슬픔을 기독교적 신앙으로 극복, 승화시키고 있다. ‘나종’은 '가장 마지막까지 갖고 있는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눈물

 

― 김현승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全體)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주시다.

 

 

<그 가을의 사흘 동안>은 제7회 한국문학 작가상, <엄마의 말뚝 2>는 제5회 이상문학상, <꿈꾸는 인큐베이터>는 제38회 현대문학상,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제25회 동인문학상, <환각의 나비>는 제1회 한무숙문학상을 각각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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