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7월 즈음으로 기억된다. 회사를 옮기게 되서 약 2주 정도 시간이 생겼다. 그래서 뭐할까 하다가 일본 도쿄에 있는 스튜디오 지브리를 무작정 구경하러 갔다. 교통편은 잘 기억 안나지만 무슨 역에서 내려서 안내 지도를 보고 있다가 우연히 개찰구를 봤는데 낯익은 한국인이 보였다. 바로 지금은 유명해진 봉준호 감독이었다. 순간 사인을 받아야 하는데 약간 부끄럽네 하다가 봉준호 감독에게 말도 못 걸어보고 헤어진(?) 추억이 있다. 아~ 그때 사인을 받아어야 했는데..쩝.. 스튜디오 지브리 내부 사진은 찍지 못하게 해서 별도의 사진이 없는 것이 아쉽다.
1985년 6월 15일 미야자키 하야오와 타카하타 이사오, 그리고 스즈키 토시오가 천공의 성 라퓨타를 제작하기 위해 토쿠마 서점의 투자를 받아 파산한 상태의 톱 크래프트를 인수하였고 이후 회사 이름을 변경하고 조직을 재편하여 탄생한 회사가 지금의 지브리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공식 첫 작품은 '천공의 성 라퓨타'. 정사원제를 도입하여 월급제가 된 것은 마녀 배달부 키키 이후부터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첫 작품인 '천공의 섬 라퓨타'(1986)의 관객 동원수는 77만 명으로 전작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못 미치는 성적을 남겼으나 TV 재방송에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천공의 섬 라퓨타 제작을 마치고 미야자키는 일본을 무대로 한 작품을 만들기로 하고 제작한 것이 바로 '이웃집 토토로'(1988) 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1972년에 제작한 ‘팬더와 친구들의 모험’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는데, 이걸 마음에 들어한 미야자키 하야오가 다시 한 번 디자인과 설정을 바꿔서 다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스토리의 기본 구성이나 토토로의 행동과 표정 연출 등이 거의 동일하다. 1950년대 도깨비 이야기는 별로 인기가 없었고 홍보도 별로 하지 않아 극장 흥행에는 참패했다. 하지만 일본영화잡지 <키네마 준보>가 뽑은 그해 일본영화 베스트 1위가 되고, TV 방영되면서(1989년 4월 28일) 21.4% 고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리고 영화 선전을 위해 만들었던 토토로의 봉제 인형이 인기를 얻고 많이 팔렸다. 토토로는 지브리를 먹여 살리는 효자 상품이 되었고, 지브리의 마스코트 캐릭터가 되었다.

'마녀배달부 키키'(1989)를 통해 미야자키는 사회에 나와서 비록 힘든 일이 있고, 때론 좌절하더라도 인생은 그래도 살만한 것이라는 용기를 주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이 영화는 많은 여성의 공감을 얻고 인생작으로 꼽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 작품부터 여주인공을 그리는 태도가 달라지는데, 주인공 키키는 이제까지 미야자키가 바라는 이상형을 투영한 공주님 스타일이 아니라, 화장실에서 볼일도 보는 현실적인 모습이다. 흥행에서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91만 5천명, '천공의 섬 라퓨타'가 77만명, '이웃집 토토로'가 62만명이었는데 '마녀배달부 키키'(1989)는 무려 265 만명의 관객수를 기록했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이 TV 시리즈에서 인기를 얻어 지브리와 미야자키에 대한 대외 인지도가 크게 높아졌고 다른 애니메이션하고는 다르게 TV를 통한 홍보가 주효했다. 이 작품이 성공한 덕분에 지브리는 정사원제와 월급제를 도입해서 열악한 애니메이터들의 고용 환경을 개선했다.
3편에 계속
출처 : 나무위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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