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주의자 백인의 첫 흑인 친구 사귀기 : 영화 <그린북>(Green Book, 2019)

1992년 여름 친구와 함께 유럽 배낭여행을 50여일 갔었다. 영국, 벨기에, 독일, 헝가리, 스위스, 스페인 등을 기차를 타고 값싼 유스호스텔에 묶고 가끔 노숙도 했었다. 순진했던 대학교 1학년 때라 주로 박물관과 유명 관광지만 돌아 다녀서 재미없는 모범생 여행이었지만 생전 처음 보는 외국 문화에 신기해 하며 다닌 여행이었다. 그 때는 잘 몰랐지만 배낭을 메고 돌아 다니면서 인종주의자들의 시비도 겪어 봤고 덩치 큰 백인 서양인들을 보면 겁나기도 했었다. 조그만한 동양인 2명이 나름 그네들의 입장에서는 만만해 보였겠지. 밤새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소지품도 걱정도 되고 해서 잠을 제대로 자기가 힘들었지만 여행 막바지에는 소지품을 훔쳐 가든 에라 모르겠다 하고 잠든 경우가 많았다.

일부 서양 백인들에게 차별 받는 동양인이었지만 나 역시 거꾸로 차별했던 경험이 있다.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가는 침대 기차에서 있었던 일로 기억하는데 조금은 덩치가 있던 흑인 여학생이 우리가 있던 침대칸으로 와서 자리가 있냐고 물어봤었는데 자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리가 없다고 거짓말을 했었다. 그 흑인 여학생은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다른 자리를 찾으러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만약 흑인이 아닌 백인 혹은 동양인 여학생이었다면 분명히 자리가 있다면서 친절하게 캐리어를 들어 우리 침대 짐칸에 넣었을 것이다. 인종차별 관련 영화를 볼 때 마다 나는 그 흑인 여학생이 생각이 난다.  28년이나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미안하다.

 

영화 <그린북> 포스터

 

영화 <그린북>은 여전히 인종차별과 흑백 갈등이 심했던 1962년 미국을 배경으로 흑인 천재 뮤지션 돈 셜리 박사(마허샬리 알리)와 운전수 이탈리아계 백인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 사이의 우정을 그린 실화를 기반으로 한 웰메이드 영화이다.  셜리 박사는 8주간의 미 남부 투어 콘서트를 위해 발레롱가(비고 모텐슨)를 운전사로 고용했다. 떠벌이 토니 라는 별명을 가진 발레통가는 허세와 주먹을 가진 이탈이아계 백인으로 클럽의 종업원으로 일하였으나 클럽의 리노베이션 공사로 인하여 두 달 이상 백수로 지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당장 일자리를 구해야 했던 발레롱가는 본인이 그렇게 싫어했던 흑인의 운전사를 해야 했다. 흑인이지만 3개 국어와 8개 학위를 갖고 있던 셜리 박사는 전통 클래식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이다, 반대로 발레롱가는 하위 노동을 주로 했던 이탈리계 백인이다. 이 둘의 성격을 서로 극단적이지만 8주간의 투어 콘서트를 통해 우정이 싹트게 된다.

 

영화 <그린북> 한 장면

영화 <그린북>은 제76회(2019년) 골든글러브 최우수 작품상과 제91회(2019년) 아카데미 작품상, 각본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우리나라에 2019년 1월 9일에 개봉했고 439,754명이 관람했다.

(참고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방금 끝난 제92회(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수상했다. 헐~~ 주요상으로만 4관왕)

 

# 영화 명대사

“ 충분히 백인답지 않고, 충분히 흑인답지 않고 충분히 남자 답지 않으면..난 대체 뭐죠?”

영화 <그린북> 명대사 장면

총제작비 2,300만 달러, 북미 박스 오피스 84백만 달러, 월드 박스 오피스 3억 9백만 달러를 기록했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78%, 관객 점수 92%를 받았을 정도로 영화 자체는 훌륭했으나 영화완성도를 떠나 실존 인물들에 대한 왜곡이 많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 원제목인 그린북은 1960년대에 발간된 책자로서 흑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숙소와 식당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는 안내책이다.

 

실제 그린북 책자 이미지

감독 피터 패럴리는 1994년 짐 캐리 주연의  <덤 앤 더머>, 1996년 <킹핀>, 1998년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2001년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등 코미디 영화를 주로 만든 감독이다.(응??)